[4주차 B-Log]
타라의 부모님은 그녀가 대학원생이 될 때까지도 여전히 그녀를 "주님께 인도할 여지가 있다"며 그녀를 모르몬교도로 만드려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녀를 사탄의 포로에 비유하며 그녀를 강력하게 회유했다. 하지만 타라는 더이상 아버지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 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즉, 아버지는 그녀의 자아의 존립을 어렵게 만든 인물이었다. 타라는 끝까지 모르몬교도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아버지께 분노로 가득한 편지를 보내고 부모님과의 연락을 단절하기까지 간다.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오드리 언니는 아버지는 위대하다면, 넌 아버지의 말을 들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타라와 오드리 언니의 차이를 보여준다. 오드리 언니는 새로운 자아로 이행하지 못한 채로 아버지의 그림자에 속박된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타라는 아버지에게 억압을 받았던 어린 소녀가 아닌 새로운 자아를 인정한다. 그녀는 "과거의 자신은 이제 완전히 떠났다"고 말하며 새로운 자신이 내린 결정들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변화의 과정을 '교육'이가 부른다고 말미에 썼다. 즉, 교육과 배움은 누군가에게 종속된 자아로부터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은 새로운 자아로의 변화를 돕는다. 이것이 바로 배움의 세계와 가족 세계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가 내린 결론이다.
<당신의 역사는 누가 쓰나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 인생은 주인공은 나다!'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스레 저 질문에 대한 답은 '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라'의 이야기를 보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기 이전의 타라는 아버지와 그 가풍에 종속된 상태였다. 가정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휘둘렸다. 당시의 타라는, 내 생각으로는, 그녀의 역사를 자신 스스로 써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애써 역사를 써내려가기 위해 펜을 잡아도 가족들이 책상에 물을 엎어 버리는 격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배움을 통해서 스스로의 독립된 자아를 찾은 이후부터 그녀는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게 됐다. 그러므로 내 인생 또한 이와 비슷할 것 같다. 배움을 통해 내 자신을 찾기를 게을리한다면 나는 이런저런 것들에 의해 내 역사를 온전히 이끌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진정한 배움을 통해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내 자신을 찾고 그 자아를 관철한다면 내 역사는 내 수중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배움의 자세를 지니며 교육을 통해 내 스스로의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타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