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미소를 띤 그를 바라보는 내 눈에서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마구 흘러내렸다. 그간 비어있던 옆자리은 나의 기다림만으로 채워지지 못했나보다. 반가움, 원망, 그리고 행복이라는 복합적 감정이 밀려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를 맞으며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종종 나를 웃음짓게 하던 추억을 이젠 함께 만끽하고 있다.

 

잠시 뒤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하늘에는 색색의 무지개가 그려졌다. 마치 우리의 재회를 축복하는 것처럼. 그 무지개 빛을 따라 우리는 하염없이 걸었다. 제자리에 돌아온 뒤,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림 뿐이더라."

 

 

겨우 한 마디씩 내뱉은 우리는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된 듯 지쳐있었다. 이 곳은 더 이상 맑개 갠 하늘 아래가 아닌 답답함의 공기로 가득찬 우리 둘 만의 공간이었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기다리는동안 나는 참 많은 것에 궁금증이 생겼다.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은 나와의 사랑이 그의 살길을 찾아줄 수 없다고 믿었는지이다.

 

 

"내 마음의 병을 고치고 싶었어. 아픔의 기억이 남은 곳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어."

 

 

 

"그럼 나는? "

 

 

"..........."

 

 

 

"내가 너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도 있었잖아..."

 

 

항상 그는 나에게 베풀기만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그에 대한 보답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때론 내가 진 마음의 빚이 이 사랑을 오래가지 못하게 했나, 그를 멀리 떠나게 했나라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속내를 모두 들으니 어릴 적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어딘가 그늘져있던 그에게는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