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_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_#7

 

 

 

 

마치 전에 보았듯이, 갈매기는 배를 까뒤집고 누워있었다. 그들은 마치 오랜 잠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여기 누워있던 갈매기들은 무엇을 염원하다가 모래로 이루어진 침대 위에 몸을 뉘었는가. 꿈을 꾼다면 악몽일까? 아니면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는 환상을 꾸고 있는가.

 

 

 

“돌아가신 내 부모의 얼굴이... 잊히지가 않아. 항상 이렇게 수면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들의 얼굴이 보여.”

 

 

 

약간의 슬픔과 깊은 절망이 그의 눈빛에 스쳐지나간다. 과거의 망령이 아직도 당신을 괴롭히는 것일까.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괜히 그의 손을 더욱 세게, 어디론가 달아나지 못하게 잡았다.

 

 

 

그게 귀여웠는지, 그는 나를 향해 피식 웃고선 두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립기도, 또 슬프기도 하지. 그들은 내 버팀목이자 족쇄였어. 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지켜줬지만, 동시에 그들이 없다는 것이 사무치게 슬퍼서... 그 고통이 영원할 것만 같아서... 견디기는 여전히 힘들어.”

 

 

 

흙 속의 잠자는 새들은 과연 무엇을 꿈꾸는가.

 

 

 

“꿈이 있었어.”

 

 

 

그는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현실이 너무 각박해서... 포기하지 못하는 꿈이 있어서... 선택해야만 해서... 미안해. 어쩌다가 보니 그렇게 돼버렸더라.”

 

 

 

갈매기는 어려서부터 하늘을 날기를 꿈꾼다. 회색 솜털을 벗어던지며, 외로운 밤을 견디며, 저 넓은 하늘을 누빌 준비를 해온다. 언젠가 저 바다의 너머를 보리라, 그리 여기며 꼼꼼히 깃털을 정비한다. 마치 엔진을 켜는 드라이버처럼 심장박동은 커져만 가고, 맑은 두 눈은 저 멀리 수평선과 저무는 태양만을 몇 번이고 기다린다. 마침내 시간이 되어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리라 다짐한 새는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두 넓은 날개를 펼치고 태양을 향해, 저 멀리 바다 너머를 향해 날아가

 

 

 

지 못하고 떨어져

 

 

 

모래사장 깊숙이 머리를 처박고는 죽었다.

 

 

 

“시시하고 쓸모없는 이야기야...”

 

 

 

그렇게 죽은 갈매기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수천의 수만의 셀 수 없을 만큼의 갈매기들은 꿈을 꾸다가 절벽에 뛰어내려 죽고 또 죽어, 살아남아도 날개가 부러져 다시는 날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도 없는 고아에게는 과분한 목표였던 거지... 예전처럼 달려 나가지 못하는 나는, 추진력이 없는 새는... 처음부터 날지 못하는 것이었을지도 몰라.”

 

 

 

현실에 굴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안전도 포기하고, 평화도 포기하고, 돈도 권력도 미래도 다 꿈이라는 별에 걸어놓은 채, 심지어는 사랑도 소홀히 하고서 갈매기는 두 날개를 펼쳐보았지만 그것은 낙하산 하나 구비되지 않은 쓸쓸한 자살시도로 끝나고만 것이다.

 

 

 

별에는 닿지 못한 채 지상에 떨어져내려, 파도와 모래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포기하기로 했었어. 할머니도 좋아하시더라,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고. 이제 떳떳한 사람으로, 네게 걸맞은 사람으로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윤...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니...”

 

 

 

갈매기는 부활할 것이다. 파도가 되어서, 바람이 되어서, 저 멀리 바다의 너머를 보고 올 것이다. 파도와 바람은 어린 갈매기에게 무용담과도 같은 바다의 두려움과 위협을 전해주고, 갈매기들은 여전히 절벽에서 그 생명을 바친다. 그러나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것이다.

 

 

 

나의 갈매기는 절대 무력하게 죽어있는 채로 그저 썩어가며 구더기와 악취를 흩뿌리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래도’라며 도전하고, 하늘을 날아오르리라, 저 바다를 넘으리라, 저 태양을 쫓으리라 소리치며 돌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래도.”

 

 

 

이에 그는 예상했다는 듯, 슬픔과 결의가 섞인 얕은 웃음을 짓는 듯했다.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기억은 영원할 수가 없다. 다짐도 영원할 수가 없다. 결의의 마음은 금세 무뎌져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거나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한다.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나 마음에 가솔린을 붓고선 활활 태우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딱 하나

 

 

 

시동을 걸어줄 누군가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였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 둘은 주황빛으로 물든 세상에서 키스했다.

 

 

 

 

 

그러나 며칠 뒤,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그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