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_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_#1
영원.
영원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버거운 것이기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죽은 새는 자신이 오늘 죽으리라 예측하고 죽은 것일까. 죽은 새는 그저 우연히 오늘 죽은 것이다. 그 찰나의 우연이 아니었다면 내일도 창공을 제 앞마당처럼 누리며 바다의 광활함을 즐겼겠지. 그 광활한 바다조차도 가로막는 육지가 있는 것을, 그 영원히 날 것 같은 새들도 끝이 있는 것을.
바닷물은 항상 내 발을 적시고 잠깐이나마 머무는가 싶을 때 거짓말처럼 밀려간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바닷물이 밀려오고 밀려감을 지켜보았다. 내 머리 위에 살포시 무언가가 부드럽게 얹혔다. 커다란 그의 손은 거칠게 나를 쓰다듬어서 오히려 짜증만 일었지만, 동시에 밤바다의 차가운 바람을 녹이는 따스함도 있었다.
그러나 확신과 필승이 얼마나 쉽게 오만과 필패로 바뀌는지 아는 나는, 여전히 죽은 갈매기를 지우지 못했다.
“영원은 너무 무거워...”
시계추를 짊어진 죄인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그저 버티자는 것은 너무나도 무겁고 힘겨운 시련이었다. 그것을 계속 들고 있어도 인생은 괴로울 것이며, 그것을 집어던지더라도 낙인이 새겨지고 송곳은 내 심장을 계속해서 찌를 것이다.
“걱정하지 마.”
독심술이라도 하는 것일까? 내 생각을 읽은 듯이 그는 천천히 말했다.
그날 밤에 그것으로 수긍한 것은 왜일까. 밤바다의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끝을 보자 했으나 끝을 보지 못한 바다에게 내 희망을 건 것일까. 한 마디의 아무런 보증도 없는 흔해빠진 멘트지만, 괜스레 그것에 의지하고 싶기도 하고, 그것을 믿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애써 죽은 갈매기를 뇌리에서 지웠다.
새는 어떻게 되었을까.
부활했다면 다시금 하늘을 마음껏 활강하며 소금기어린 바다 냄새를 즐기고 있을까.
어쩌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라 무리한 요구를 한 우리에게 저주를 퍼붓지는 않을까.
아니다. 새는 모래가 되어, 바닷물이 되어, 저 하늘의 바람이 되어 날아갔으리라.
그날의 기억은 편린들만 남아 내 머릿속을 간지럽힌다. 톱니바퀴와도 같은 일상은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서 매번 기름칠을 해도 삐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