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_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그날 바닷길을 따라 우리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걸었다. 장마철이었던 듯도 싶다.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보다 해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우리가 부두로부터 멀어지면서는 해변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마주치기 드물었으니까. 불어오는 바람 속에 섞여 있는 소금기가 코끝에 맡아졌다. 해변 위쪽의 숲에서 이따금 나무들이 거칠게 흔들리기도 했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해변에 나란히 서서 붉은 해가 바닷물 속으로 쑥 빠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서로 어깨를 걸었다. 해가 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붉은 태양은 눈 깜짝할 새에 바다에서 사라져버렸다. 일몰을 지켜본 뒤로 웬일인지 그는 울적해졌다. 침울한 나에게 줄곧 무슨 말인가를 해주려고 애쓰던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조용해졌다. 그렇게 말없이 해변을 걷고 또 걷다가 바닷물에 밀려와 있는 죽은 갈매기를 발견했다.
—새야!
내가 젖은 모래 위에 떠밀려온 죽은 새를 보며 웅얼거리자 그가 모래 구덩이를 깊이 파고 새를 거기에 묻었다.
—무슨 소용이야. 바닷물이 또 쓸어가버릴걸.
—그래도!
그래도! 라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오르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는 한때 내게 언제나 그래도! 라는 말을 연상케 하는 존재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래도 그게 낫잖아! 라고 말했던 그런. 그는 가방에서 노트를 한 장 찢어 다시 부활하라, 새여, 라고 써서 나무막대에 돌돌 말아 새의 무덤 앞에 꽂아두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을 먹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뭘 먹었던 기억도 배가 고팠던 기억도 없다. 바다 끝이 어디인지 알아보겠다는 듯 우리는 모래 속으로 발을 빠뜨리며 섬에 어둠이 밀려올 때까지 오래오래 걸었다. 어둠이 밀려오면 바닷물도 검어진다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검은 물은 물을 넘고 또 넘어서 우리 발치에 닿았다가 다시 밀려갔다.
—정……윤!
얼마쯤 지나 그가 나를 불렀다. 그가 나를 성까지 합해 정윤이라 부를 때는 생각할 게 많다는 뜻이었다.
—응?
—우리 오늘을 영원히 기억하자.
검은 바닷물이 또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오늘을 잊지 말자.